어린 시절 〈천사 소녀 네티〉를 보며 네티처럼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다. 통통. 가볍게 지붕 사이사이를 날며 뺨에 스치는 바람, 더 높은 하늘의 공기 냄새 같은 것을 떠올리다 보면 진짜로 공중에 있는 것처럼 기분이 상쾌해지고, 온몸에 활력이 돌았다.

스무 살쯤 놀이공원에서 처음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불어오는 바람에 숨이 막힐 것 같아 입도 눈도 모두 가리고, 낑낑거리다 문득 네티 생각이 났다. 어쩌면 네티도 카메라 밖에선 숨이 막힐 것 같은 바람에 맞서 찡그리기도 하고, 컷 컷! 스탑!을 외치지 않았을까. 잠시 숨을 고른 네티는 다시 카메라가 켜지자 우아한 자세로 통통, 웃음을 잃지 않으며 지붕 위를 날아다닌다. (단, 임무가 있어 빠른 속도는 유지하면서)

『우주에서 가장 밝은 지붕』 별 할머니도 지붕 위를 날아다닌다. 대신 네티처럼 쌩쌩은 아니고 저 집은 함석지붕이고, 이 집은 기와지붕이네, 슬렁슬렁 지붕들을 구경하면서 하늘을 비행한다. 나는 네티가 나이가 든다면, 꼭 별 할머니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14살에 날쌔게 지붕 위를 뛰어다녔다면, 일흔쯤에는 어느덧 연륜이 느껴지는 자세로 날기보다는 공중에 둥둥 떠 여기저기 살펴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고수의 모습으로.

별 할머니는 언뜻 장난기 많고 느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츠바메가 무언가 물었을 때 언제나 막힘없이 자기 의견을 이야기해준다. 슬렁슬렁 빈틈 있어 보이는 건, 두 다리가 지면에 착, 붙어 있는 사람 특유의 여유다. 자기 인생의 모난 부분만을 찾아 헤매느라 시간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몫의 지붕을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인 다음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별 할머니였다.

별 할머니의 ‘진정한 인생 고수는 허술해 보이지’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책을 샅샅이 읽다 한 문장이 마음에 박혔다.

“자기가 어떤 지붕 아래 있는지 아는 사람은 강해. 자기를 잘 아는 거지.”

🎱북뉴스 담당자

제가 좋아하던 ‘선가드’라는 로봇은 지붕을 밟고 집을 터트리고 다녔는데 네티는 우아하게 밤 하늘을 가르고 다녔지요. 지금 생각하니 조용히 할 일 하는 사람이, 요란하게 ‘정의’ 프로파간다를 외치던 사람보다 나은 듯합니다. (네티는 요란하지 않았나? 적어도 도시를 파괴하진 않았지요.) 한편으로 63빌딩만한 괴수를 잡기 위해선 거대 로봇이 필요하다는 그쪽 의견도 있겠으나…

하여튼 “자기가 어떤 지붕 아래에 있는 사람은 강해”라는 말을 자기 집 대출이 얼마나 남은 사람은 강해, 라는 말로 들리는 삼십대 직장인으로서 (물론 나는 아직 효자 생활 중) 이 책은 어딘지 선선한 기분이었습니다. 옥상에 올라 찬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이어질 장기전을 준비하는 마음이랄까…

현문에 우문이었는데요. 죄송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