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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이제는 소녀에게 여자아이의 옷을 입혀야 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은 아주머니는 욕실에 들어가서 한참 울다 나오지만, 울었던 흔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편뿐 아니라 소녀에게도,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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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표정이나 침묵마저도 읽어내는 마음의 눈이 떠진다.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 미처 하지 못한 말, 할 수 있는데도 차마 눌러 담는 말까지도 다 이해할 것만 같은 마음. 우리가 이런 마음을 텍스트로 옮기면 그대로 문해력이 된다. 텍스트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사랑의 기술, 그것이 문해력이니까. 텍스트에 대한 사랑은 비단 문학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수학 공식이나 평범한 숫자들까지도 아름다워 보인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온갖 원소기호로 가득한 난해한 수식들마저도 눈부신 공예품처럼 반짝인다. 음악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온갖 악보들과 복잡한 음악 용어들까지도 종이 위에서 보석처럼 반짝인다. 텍스트에 대한 사랑,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 반대로 아무리 어휘력이 뛰어나도 텍스트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텍스트의 함축적 의미까지는 제대로 밝혀내기 어렵다. 우리가 더 나은 문해력을 얻기 위한 최고의 기술, 그것은 바로 텍스트에 대한 사랑의 기술이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느낌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군가 나를 한없이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아주는 것도 좋고,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 어딜 가든 이제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좋다. 혼자 밥을 먹을 때도 ‘이렇게 맛있는 건 그 사람과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있지 않을 때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 존재함을 깨닫는다. 이렇듯 사랑받는 느낌의 좋은 점은 수없이 많지만, 나에게 가장 좋았던 것은 ‘이제 더 이상 간절히 그 누군가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좋다’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방황하고, 뒤척이고, 서성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삶의 나침반이 마구 흔들려 매일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런 느낌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대화와 대화 사이에 틈이 있어도 아무런 어색함이 없는 것. 엉뚱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대답을 해도, 그냥 다 받아줄 것 같은 느낌. 황당한 농담을 해도 다 이해해줄 것 같은 느낌. 가슴속에 휘몰아치던 내 모든 간절한 문장이 비로소 쉴 곳을 찾아낸 듯한 안도감이 바로 사랑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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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좋을 것만 같은, 이 충만한 사랑의 느낌이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에서는 이렇게 드러난다. 킨셀라 아주머니가 잠들기 전 소녀를 눕히고 머리핀으로 귀지를 파줄 때 둘의 대화는 꼭 다정한 모녀 같다. “여기다가 제라늄을 심어도 되겠다.” “엄마가 귀 청소 안 해주니?” 소녀는 자신을 돌봐주지 못하는 엄마를 다 이해한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엄마한테 항상 시간이 있는 건 아니라서요.” 아주머니는 소녀의 엄마인 메리에게도 연민을 느낀다. “불쌍한 메리, 당연히 그렇겠지.” “너희를 전부 다 돌봐야 할 테니까.”

킨셀라 아저씨는 소녀에게 외출을 권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시내에 나가려면 너도 손이랑 얼굴을 씻어야겠다.” 아이는 머뭇거린다. 아이는 외출을 하기 위해 꼭 손이랑 얼굴을 씻어야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 침묵 속의 여백을 나는 이렇게 읽어본다. 이 소녀는 제대로 된 나들이를 해본 적도 없고, 식구들이 모두 멋지게 차려입고 좋은 곳에 간 적도 없었던 것이 아닐까. 킨셀라 아저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그 정도도 안 가르쳐줬니?” 소녀는 당황하지만, 이런 관심이 싫지 않다. 아이가 받아야 했던 관심, 아이가 누려야 했던 사랑, 아이가 즐겨야 했던 행복. 그 모두가 예전에는 없었고 이제는 생겼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기에.

어느 날 아이는 드디어 이렇게 말한다. “두 분이 원하시는 만큼 저를 데리고 있어도 된다고요.” 아이는 마치 부모의 말을 대신 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이것이 아이의 진심이라는 것을 세 사람은 모두 안다. 이 세 사람은 어느덧 가장 친밀한 소통의 공동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말이 없던 아이가 이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이렇게 커다란 용기를 내어 말하다니. 아주머니는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윽고 조용해진다. 그 조용함,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세 사람의 진정한 연결 고리가 느껴진다. 아이는 이 집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 킨셀라 부부도 간절히 원한다. 자신들도 모르게 이 아이와 너무 가까워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