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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 너구리_가까이 살지만 보이지 않는 야생동물

<aside> 💡 천연기념물이 사는 땅을 개발하려면 그나마 환경영향평가라도 있어 한 번은 제동이 걸리지만, 숲에 너구리가 산다는 이유로 지으려던 아파트를 짓지 않는 경우는 없다. 흔한 동물은 흔하게 죽고, 그 죽음은 인지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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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옆 숲속의 너구리

2년 전 여름, 지금 사는 집으로 막 이사를 왔을 때 이상하게 밤만 되면 개가 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개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아직 동네에 적응하지 못한 터라 괜한 의심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어느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아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개가 내는 특유의 ‘깨갱깽’ 소리와 달랐다. ‘꺄갸갸갸’ 하는 소리였다. 게다가 소리는 집 바로 옆의 숲에서 들렸다. 손전등을 비춰 보니 너구리(Nyctereutes procyonoides)였다. 그 숲길은 사람들이 산책하며 너구리가 먹을 만한 것들을 많이 흘리고 가는 곳이었다. 번식기도 지난 때였으니 그 날카로운 소리는 분명 너구리들이 그 쓰레기를 먹겠다고 다투는 소리였을 것이다. 너구리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의사소통하는 소리를 그때 처음 들었다. 요즘도 우리 집에서는 해 질 녘부터 자정까지 종종 너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울에서 아파트 창문 밖으로 너구리를 볼 수 있는 집이라고 하면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도심에는 생각보다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우리의 관심이 미치지 않아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 역시 개 소리와 너구리 소리를 구분할 수 없었다면, 창문을 열고 너구리를 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뭉뚱그려 ‘새’ 혹은 ‘벌레’라고 부르는 다양한 동물은 물론이고, 개나 고양이 같은 포유류도 여러 종류가 이 거대한 도시에서 함께 살고 있다. 화단을 빠르게 지나는 족제비, 베란다 어느 구석에 붙은 안주애기박쥐, 한강 둔치의 고라니와 삵, 수달은 모두 우리와 함께 도시의 삶을 사는 야생동물이다.

너구리가 먹고사는 일

너구리는 만만한 음식인 라면에 이름이 붙을 정도로 흔한 동물이다. 한반도에 사는 다른 육상 포유류와 비교해 새끼를 많이 낳고, 행동권(동물이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정한 공간)이 좁아서 개체 수가 많다. 제법 사냥을 잘해서 개구리나 쥐, 두더지 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먹기도 하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물고기도 잡아먹는다. 새알을 주워 먹거나 식물의 열매, 잎, 줄기, 뿌리까지 모두 먹어서 에너지원으로 쓰는 동물이다. 이런 특성 덕분에 ‘쥐잡기 운동’이 만연해 쥐를 포식하는 여우가 멸종할 때도 너구리는 살아남았다. 물론 너구리 가죽이 여우 가죽보다 값싸서 의도적인 포획이 적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