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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상징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찾는 과정에서 싹 텄을 것이다. 수백 만 년에 걸쳐 진화한 인간의 인지능력이 마침내 상징이라는 새로운 생존 수단을 확보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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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상징의 힘.jpg

이번 이야기는 하나의 도구가 아닌, 이제까지 살펴본 도구들에 약간의 문화적 요소를 더한 것이다. 앞의 이야기에서 동굴 속 어둠을 걷어낸 등잔, 그 안에 안료를 사용하여 그린 오래된 벽화들에 관해 알아보았다. 거기에 실용적이지 않은(!) 도구 몇 가지를 더하면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인지발달 과정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아서 보면, 따로 볼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들이 아주 오래전에 겪은 인지발달의 변곡점 하나를 되짚어보자.

변화를 암시하는 가장 대표적 도구로는 장신구를 들 수 있다. 왜 고고학자들은 장신구의 출현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할까? 다른 도구와 달리 장신구는 개인의 소유물인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한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이미 그 자체로 타인을 의식한 ‘이타성’ 물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장신구는 철저한 진화적 산물인 인간의 몸을 사회적 도구로 전환해준다. 일종의 ‘인체의 문화화’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인 신체 장식, 혹은 장신구 착용을 통해서 집단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냄과 동시에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 장신구의 이러한 기능은 바로 ‘상징성’에서 나온다. 인간은 몸짓이나 언어가 아닌 장신구 자체의 상징성만으로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상징물을 통한 직관적 소통이 언어보다 훨씬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올림픽 경기장을 떠올려보자. 그곳에서는 선수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유니폼에 인쇄된 국기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 상징의 힘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장신구는 인간 인지 능력과 집단의 성격에 모종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가장 강력한 고고학적 증거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림 1. 모로코 비즈무네동굴 조가비 장신구.jpg

[그림 1. 모로코 비즈무네동굴 조가비 장신구]

지금까지 발견된 원시 장신구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가장 이른 시기의 장신구는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Morocco의 비즈무네Bizmoune 동굴에서 출토되었다. 그곳에서 약 14만 년 전에 33개의 바다고둥에 구멍을 뚫어 만든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그림 1] 끈으로 고둥을 꿰어 사용하였으며, 미량의 붉은 안료도 확인되었다. 현재 유적은 해안선으로부터 1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하지만 과거의 해수면 높이를 감안하면 제작 당시에는 50킬로미터 거리였다고 추정한다. 비즈무네 사람들이 고둥을 얻으려면 직접 바다까지 갔다 오거나, 혹은 다른 무엇과 고둥을 교환했어야 한다. 바다고둥은 크기가 작아서 식량으로서는 가치가 거의 없다. 이런 점에 비추었을 때 애초에 장신구로 사용하고자 반입했다고 간주할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카푸제Qafzeh 동굴에서는 식용 조개의 일종인 글리시메리스Glycymeris로 만든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조개의 등쪽 각정Umbo 부위에 구멍이 뚫린 10여 개의 조가비를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니 붉은 안료와 끈으로 엮었던 흔적이 나왔다.

연구자들은 인간의 뇌는 곡선으로 된 물체에 호의를 느끼며, 그러한 특성 때문에 조가비를 장신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육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둥글고 매끈한 바다 조가비류를 일상에서 자주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이 조가비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그 특별함에 어떤 ‘상징’을 더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거나 공동체의 소속감을 드러내고자 했을 것이다.

그림 2. 5만 년 전에 사용한 끈으로 추정되는 섬유질.jpg

[그림 2. 5만 년 전에 사용한 끈으로 추정되는 섬유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