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그렇지만 단순히 누가 더 오래된 것이냐의 논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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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낯설 수도 있는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의 구석기 시대 예술이다. 아시아에 구석기 시대 예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구석기 시대 예술은 곧 유럽의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이미지들과 동의어일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간의 유럽 중심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 연구 성과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선입견일 것이다. 오늘은 아시아 지역의 구석기 시대 예술에 대해서 최소한의 지식을 챙겨보도록 하자.
최근 들어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지역은 아시아의 남쪽에 있는 해양 국가 인도네시아이다. 여러 섬들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는 빙하기를 거치는 동안 해수면 변동을 비롯해 대규모 환경 변화를 여러 차례 경험한 지역이다. 지금은 해수면이 높아져 사라진 대륙 ‘순다랜드Sundaland’는 아프리카를 출발해 동쪽으로 이동하던 고인류들에게 주요한 경로였을 것으로 간주되는 지역이다. 인도네시아는 그 경로에서 호주 대륙으로 연결되는 중간 기착지였다. 따라서 그와 관련된 중요한 고고학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최근 다수의 동굴벽화가 발견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Sulawesi 섬 역시 그러한 고고학적 배경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호주 그리피스Griffith 대학의 막심 오베르M. Aubert 연구팀은 술라웨시의 남서부 지역 수백 개의 석회암 동굴들 중 일곱 곳에서 벽화를 찾아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벽화들 중 일부는 1950년대 네덜란드 고고학자 헤렌 팜H. Palm 등에 의해 이미 알려져 있던 것이다. 다만 발견 당시 신석기 시대 이후의 그림으로 오판되며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한 채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던 중 최근 벽화에 대해 연대 측정이 시도되었고, 그 결과 구석기 시대의 그림으로 판명되면서 전 세계 동굴벽화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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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이미지 보정 처리를 거친 레앙 테동게 동굴벽화(Nature 514(7521), 2014.10)]
석회암 동굴은 외부로부터 물이 공급되는 한 꾸준히 성장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만일 특정 시기에 벽면에 그림이 그려졌고 그 위를 새로운 석회 생성물이 덮었다면, 안료 위 석회 생성물 연대를 측정해서 그림이 그려진 최소한의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우라늄 계열U-series 연대 측정법은 이런 환경에서 생성된 석회층의 연대 측정이 가능한 기술이다. 이를 통해 술라웨시 동굴에서 유럽의 동굴벽화보다 더 오래된 것들을 발견했고, 그 결과가 언론을 통해 자극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유럽에서 현재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벽화는 스페인의 엘 카스티요El Castillo 동굴의 ‘손 프린팅’이다. 대략 4만 500년 전 무렵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술라웨시 레앙 테동게Leang Tedongnge 동굴에서 측정된 연대는 그보다 5000년가량 더 오래되었다(4만 5400년~4만 6400년 전). 아시아의 이 새로운 연대를 유럽 연구자들이 받아들이려면 좀 더 많은 자료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물론 유럽에도 6만 년이 넘었다고 추정되는 벽화들이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어디가 더 오래된 것이냐의 논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유럽의 동굴벽화를 보면서 들었던 의구심은 ‘지나치게’ 잘 그렸다는 것이다. 기술이든 문화든 대개는 출현기의 어수선하고 조악한 단계가 있고, 뒤이어 발전기를 거쳐 전성기의 화려하고 세련된 단계에 이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잡한 쇠퇴기의 모습을 보여주게 마련이다. 이에 비해 유럽의 동굴벽화는 거두절미하고 갑자기 ‘전성기스러운’ 모습만 뚝 잘라서 보여주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유럽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는 출현기의 조악한 벽화들이 얼마든지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연대가 술라웨시보다 빠를 수도 있다. 즉 인도네시아에 있는 ‘유럽보다 이른 시기의 벽화’들도 그와 같은 관점에서 수용되고 상호보완적으로 연구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