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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이제부터 ‘원시’ 아닌 ‘문명’과 ‘기술’의 시대라는 관점에서 구석기시대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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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료의 발견.jpg

인간, 자연의 색을 탐하다 (1).jpg

이젠 완연한 봄이다. 파란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흩어져 있고, 들판에는 새싹이 앞 다투어 올라온다. 곧 울긋불긋 봄꽃과 연초록 나뭇잎도 일제히 피어오르리라. 나는 이 세상 모든 색 중 이른 봄 나뭇잎의 연초록을 가장 사랑한다.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고 잎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굉장히 섭섭하다. 우리 곁의 반려견은 이 아름다운 봄을 흑백으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의 빛깔을 함께 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 앞서 ‘등잔’ 이야기에서 언급했듯 인간은 고도로 진화한 눈 덕분에 대자연의 형형색색 빛깔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인간이 외부로부터 얻는 정보의 70퍼센트 이상은 시각 정보라고 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 DNA 깊은 곳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이 있다. 그 결과 인간은 세상 모든 일에 직접 참견하고 그것을 소유하길 원한다. 그러니 아름다워서 황홀하기까지 한 자연의 색깔들도 당연히 탐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인간이 왜, 언제부터 안료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공하고 어디에 활용했는지 등을 이야기하려 한다.

제일 먼저 안료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유를 질문해보자. 현대인에게 색은 일종의 언어이자,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신호등의 녹색과 빨간색은 세계의 도로 어디에서든 통하는 세계인의 공통 언어다. 선거철인 요즘에서 여러 정당이 각자를 상징하는 색을 내걸고 경쟁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때로는 특정 색이 금기를 나타내거나 영적 힘을 지닌다고 믿기도 한다. 부적에 쓰는 경면주사鏡面朱砂의 붉디붉은 색이 특히 그렇다. 인간이 맨 처음 안료를 사용한 이유는 아마도 주술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을까.

[그림1. 파푸아뉴기니 후리 위그멘Huli wigmen 부족의 바디 페인팅]

[그림1. 파푸아뉴기니 후리 위그멘Huli wigmen 부족의 바디 페인팅]

안료의 기원을 파악하려면 초기 사용처를 추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와 관련된 고고학적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은 거꾸로, 초기 안료 사용처가 ‘이내 사라지는 것들’이었음을 의미한다. 연구자들은 ‘이내 사라지는 것들’로 신체 장식, 예컨대 타투tatoo나 바디 페인팅body painting 등을 지목한다. 이런 행위는 원래 야생에서 생존력 강화를 위해 강인한 이미지를 부각하는 목적이었다. 다른 동물들이 장구한 진화를 통해 얻은 보호색을 인간은 안료를 사용하여 단기간에 획득한 것이다. 현대의 원시 부족에서도 볼 수 있는 바디 페인팅은 단지 몸에만 그치지 않고 장신구나 무기류로 범위가 확장되었다. 하지만 오래 전 인간의 신체에 칠했던 안료는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다행히 장신구에 사용한 안료는 남아서,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안료 관련 유적 중 하나인 이스라엘의 카푸제Qafzeh 동굴에는 3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지중해에서 채집해온 조가비가 있었다. 조가비 중 일부에는 구멍을 뚫고 줄에 묶어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 서로 부딪혀 마모된 흔적도 확인되어서, 이것을 장신구로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정밀 분석 결과 조가비의 표면에서 붉은색과 검은색의 안료가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혹은 그 이전의 인간이 자연의 색을 탐하고 소유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림2. 카푸제 동굴의 안료 덩어리와 안료가 칠해진 조가비들]

[그림2. 카푸제 동굴의 안료 덩어리와 안료가 칠해진 조가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