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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 길고양이 ② : 인간은 다 알지 못하는 고양이의 삶

<aside> 💡 “열심히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가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허망함과 그리움을 느낄 뿐이지 고양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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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사는 고양이든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더 길다. 집 안에서 기르는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하루의 반 이상을 잠자는 데에 쓰는 고양이의 일상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인간과의 상호작용은 밥이나 물을 주고, 쓰다듬거나 장난감 놀이를 하는 매우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 얼마나 되는지 셈해보면, 우리가 고양이의 일상을 채우는 경험과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아차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하물며 길고양이의 일상은 더 알기 어렵다. 열심히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가 어느 순간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허망함과 그리움을 느낄 뿐이지 고양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키우다 실종된 애완동물처럼 방을 붙이고 찾는 일도 적다. 돌보던 길고양이는 ‘이사를 갔나, 어디서 죽었나, 그저 사라진 건가’ 하고 짐작만 하는 느슨한 돌봄의 대상이다. 나는 길고양이가 어떤 경험을 하며 사는지 늘 궁금하다. 언젠가는 연구 주제로 잡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다. 이른바 길고양이 복지 연구다. 지금은 고양이의 관점에서 살펴본 자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리 가설을 세워보자면, 사람이 기르다 어느 순간 통제를 벗어난 고양이나 일부러 버린 고양이는 처음부터 길에서 삶을 시작한 고양이보다 고난이 많을 것이다. 인간이 쓰다듬는 손길이나 불러주는 목소리를 무척 좋아하던 고양이가 집에서 나오거나 쫓겨나서 길에서 살게 되면, 그래서 사람이 챙겨주던 끼니와 몸을 누일 쿠션이 사라지면, 고양이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이런 고양이들은 사람과 잘 지내는 법을 알기 때문에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보다 다시 사람의 집으로 입양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동물학대 범죄에 노출될 확률도 높다. 만약 누군가에게 입양되지 못한다면 길에서 확보해야 하는 먹이 자원, 영역이 겹치는 다른 길고양이와의 관계, 위험한 사람이나 자동차를 피하는 요령 같은 요소에 따라 생존과 번식 성공률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내내 안전 문제에 시달릴 것이다. 다시 인간의 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 험난한 생존 기간은 매우 짧을 것으로 짐작된다.

애초에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들은 좀 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야생화된(feral)’이라는 말로 불리는 이 고양이들은 자원이 풍부한 민가 근처를 맴돌지만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생존 확률을 높여왔다. 여느 야생동물처럼, 사람이나 개가 안전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달아나거나 숨기 바쁘다. 이런 성향에는 부정적 경험과 그것이 오랜 기간 축적된 유전자가 관여한다. 사람이 싫지만 사람이 만들어내는 먹이 자원은 유용하다. 사냥은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지만, 사냥에만 의존하는 것보다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는 것이 훨씬 유리한 전략이라는 것을 4000~1만 년의 진화를 거치면서 알게 되었다.

이들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경험을 하며 일상을 보낼 것이다. 사냥감을 기다리고 쫓고 물어 죽일 때 엔도르핀이 뿜어져 나오는 경험을 할 것이다. 포식자와 자동차 사고를 항상 신경 쓰며 피해야 한다. 잠자리는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울 것이다. 이들의 가장 큰 천적은 사람이고, 그 외에 고양이를 포식할 수 있는 개가 확률적으로 가장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고양이가 만만한 먹잇감은 아니지만 담비나 수리부엉이 정도 되는 야생동물도 때때로 고양이를 잡아먹을 것이다. 선의를 가진 사람이 이런 고양이를 ‘구조’한다 해도 이들이 가진 인간에 대한 공포와 공격적 성향 때문에 입양될 가능성은 낮다. 설사 입양된다 하더라도 폐쇄된 공간과 인간에 대한 공포로 인해 복지 수준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영영 침대 아래에 숨어 사는 고양이로 늙어 죽을 수도 있다. 이러한 고양이에게 인간의 ‘구조’는 그 의도와 달리 죽음 혹은 ‘사냥당해’ 평생 감금당하는 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돌봄과 폭력이 반드시 서로 배타적이지는 않다.

한국의 길고양이 정책

고양이들이 길에서 어떤 삶을 사는지 인간이 알지 못하는 동안에도 한국의 길고양이 개체 수는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먹이 자원이 충분한 개체군이 빠르게 번식한다는 원리는 길고양이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인간이 직간접적으로 제공하는 먹이 자원이 있는 곳으로 고양이는 모여들고 번식한다. 그 결과 오랫동안 사람과 고양이가 살지 않던 섬이나 깊은 산의 생태계가 흔들리게 되었다. 도시의 생태는 없는 것처럼 간과되곤 하는데, 도시에서도 길고양이는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는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극지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륙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겪는 일종의 사회문제다. 고양이가 포식자로서 야생동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제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고양이는 1990년대부터 국제적 외래침입종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2000년대 들어서는 고양이가 야생동물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각국 정부에서는 인간의 직접적인 통제 없이 돌아다니는 고양이(free-roaming cat)의 개체 수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를 고민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길고양이를 정책적으로 관리한다. 보호소에서 보호하며 입양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중성화 수술을 해서 다시 방사하거나, 죽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터키처럼 도시의 길거리에 사는 고양이를 공동체 소유의 애완동물로 여기고 그대로 두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정책은 대개 동물의 복지도 사람의 복지도 열악한 곳에서 택하는 방식이다. 길에서 높은 밀도로 서식하는 고양이와 개의 삶은 전염병과의 싸움으로 결코 녹록하지 않다. 한국은 정책적 차원에서는 길고양이에 무관심한 나라다. 길고양이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거나, 길고양이의 복지를 고민하거나 개체 수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드물다. 한국의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의아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