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시리즈 메인 페이지로 이동

📌사계절 북뉴스 구독하기

<aside> 💡 등잔은 인간 공동체의 성장을 보여주는 증거다.

</aside>

인생은 문해력 싸움이다 (1) 복사.jpg

1화에서는 인간이 빛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무렵의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뜨거운 불에서 빛을 분리하고, 그 빛을 원하는 곳으로 운반할 수 있게 된 인간에게 어둠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들이 빛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자.

고고학자들이 구석기시대 등잔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 이후, 유럽에서는 등잔이 계속 나왔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등잔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라스코와 라무트 동굴의 등잔처럼 전체를 정교하게 갈아 만든 최상급 등잔은 아주 소량에 불과했다. 상당수는 간단히 가공해서 오목하게 만들거나, 자연적으로 오목하게 생긴 재료를 골라 사용했다. 심지어 일부는 손바닥만한 돌에 불을 붙였다. 일례로 이누이트족은 임시 작업장에서 작고 편평한 돌에 동물성 지방과 이끼류를 얹어서 등잔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다. 등잔의 형태가 이처럼 다양하게 분화되었다는 것은 그 사용이 보편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등잔은 주로 어디에서 발견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동굴 안쪽보다는 입구와 바깥에서 훨씬 더 많이 발견되었다. 동굴 내부에서 발견된 등잔은 통계적으로 20퍼센트 미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잔은 동굴에 들어갈 때도 사용하지만 나올 때도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 등잔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장소는 동굴의 입구 근처이고, 대개 근처에 모닥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아마 입구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등잔을 만들거나 손질하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모닥불에서 불을 옮겨 붙였다고 추측된다. 한편 정교하게 가공한 등잔일수록 동굴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흥미롭다. 투박한 등잔은 이동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사용하고, 정교한 등잔은 동굴 내부에서 ‘어떤 의식’을 행할 때 사용했던 것 아닐까? 최상품 등잔에는 동굴 벽화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상징적 기호들이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림1. 원시 등잔과 동굴벽화 그리기(상상도)]

[그림1. 원시 등잔과 동굴벽화 그리기(상상도)]

구석기시대의 등잔은 얼마나 밝았을까? 원시 등잔의 성능이 궁금했던 실험고고학자들이 말이나 소과 동물의 지방으로 등불을 붙여보았다. 그 결과는 우리가 사용하는 양초보다 어두웠다. 빛의 강도를 ‘룩스Lux’ 단위로 표시한다. 1룩스는 1미터 거리에서 촛불 하나가 내는 빛의 밝기이다. 원시 등잔은 1룩스가 채 되지 않는 셈이다. 그렇지만 동굴 속 완전한 암흑을 몰아내고 여러 활동을 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한 장소에서 수십 개의 등잔이 발견된 사례도 있다. 때로는 여러 개의 등잔을 동시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가 책과 인터넷에서 본 구석기시대 동굴 벽화 사진은 동굴 안을 전깃불로 환하게 밝힌 후에 촬영한 것들이다. 그래서 벽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구석기시대에는 등잔을 아무리 여러 개를 켠다 하더라도 전면을 한눈에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말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동굴 벽화를 보고 지금 우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 차이는 동굴 벽화를 이해할 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보이는 것이 달라지면 인식 또한 달라진다. 상상컨대 구석기인들은 자그마한 등잔이 밝혀주는 부분들만 보았을 것이다. 불빛 사이사이에 어둠으로 가려진 공간은 상상력으로 채웠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더욱 ‘현실적인’ 일이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비롭지’ 않았을까? 실제로 동굴 벽화 중에는 동물의 일부만 그리거나 한 곳에 서로 다른 동물과 이야기를 그린 경우가 많다. 그 이유를 원시 등잔의 성능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림2.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

[그림2.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

필자는 경험을 통해 동굴 내부가 얼마나 어두운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2009년 가을, 세계유산이지만 보존을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한 제주도 구좌읍 월정리 소재 용천동굴을 조사한 경험이 있다. 용천동굴은 원래 용암동굴이지만 오랫동안 빗물에 녹은 석회 성분이 지하로 침투해 석회동굴의 특징도 갖게 된 아름다운 동굴이다. 그 내부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편이 여러 점 발견되면서 우리는 고고학 조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