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이제 최소한 ‘간석기=신석기 시대’라는 등식은 성립하기 어려워졌다.
</aside>
구석기 시대는 현행 표준국어대사전에 “신석기 시대에 앞선 석기시대… 구석기 및 골각기(뼈도구)를 사용”했다고 명시되어 있다. 신석기 시대는 “문화 발전 단계에서 구석기 시대의 다음, 금속기 사용 이전의 시대… 간석기와 골각기(뼈도구)를 사용”했다고 되어 있다. 언어 사전이지만 당연히 고고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참조하여 작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얼마나 정확할까?
구석기 시대라는 설명은 ‘구식’ 석기를, 신석기 시대는 ‘신식’ 석기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이미지를 준다. 그래서일까, 구석기 시대에는 뗀석기를 사용했고 신석기 시대에는 간석기를 사용했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어 있다. 현행 중등 역사 교과서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상당히 다르다. 깨뜨렸느냐, 갈았느냐와 같은 석기 제작 기술로는 두 시기를 구분하는 것이 매우 모호할 뿐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소위 신식 석기라고 생각되는 간석기들에 대한 오해를 말끔히 정리해보자.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간석기는 무려 6만 5000년 전의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시작을 아무리 빨리 잡아도 1만 2000년 전쯤이니, 최초의 간석기는 그보다 5만 년 이상 앞선 시기에 등장했다. 그 무대는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의 해안지대로, 일대에 동남아시아의 소순다열도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로 진입했던 최초의 사람들이 살던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대륙 북단부에 있는 마제드베베Madjedbebe 유적도 그중 하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 거주의 흔적으로 여겨지는 이 유적에서 날 양쪽을 간 도끼와 숫돌, 한 면 혹은 두 면을 간 격지들, 노란색과 붉은색의 안료 덩어리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다만 6만 5000년이라는 절대연대가 층위 교란의 결과일 수도 있어서, 검토의 여지는 남아 있다.
마제드베베에서 남서부로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카펜더스갭1(CG1) 유적에서도 간석기가 출토되었다. 이곳은 해안과 그리 멀지 않은 바위그늘 유적으로, 역시 날 부분만 잘 간 현무암제 도끼가 발견되었다. 약 4만 7000년 전에 사용한 이 도끼는 연대 논란이 있는 마제드베베 도끼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간돌도끼다. 이처럼 간돌도끼가 일찍부터 오스트레일리아의 북부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 ‘이 지역 초기 정착민들이 벌목과 같은 목재 가공 작업에 특화된 집단’이었을 가능성이 제시되어 있다. 이 일대에서는 일찍부터 바다를 건너거나 어로 활동에 필요한 원시적 배를 만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대나무 등의 목재 가공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목공에 특화된 도구인 간돌도끼가 개발되었다는 가설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아시아에서도 간석기의 발견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일본열도는 지금으로부터 3만 8000년 전에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간석기가 출현한 지역이다. 출토량 역시 가장 많다(일본 전국에서 약 800점 출토). 한국은 2만 5000년 전 무렵부터 임실 하가 유적, 순천 월평 유적, 진주 장흥 유적, 장흥 신북 유적 등에서 간돌도끼와 숫돌, 갈돌류 등이 소량씩 제작되었다. 장흥 유적의 숫돌은 간돌도끼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날을 반복적으로 간 결과 도끼날과 같은 폭의 홈이 양쪽으로 남아 있다. 중국의 경우도 광시성廣西省과 저장성浙江省 등의 남부 지역에서 약 2만 년 전 이후의 간돌도끼가 10여 점 발견되었다.
그림1. 장흥 신북 구석기 유적의 간석기들
동아시아의 구석기 시대 기술적 요소들은 일반적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확산되었지만, 간석기는 그에 역행하는 연대 분포를 보여준다. 따라서 간석기 문화는 동남아시아의 열도 등을 통해 해양을 건너다니던 소위 남방계 집단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구석기 시대의 간돌도끼 분포권이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중국 남부–한반도 남부–일본열도’ 등 주로 북태평양 연안에 몰려 있는 점이 그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한편 모계로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DNA(mtDNA) 하플로그룹 중 M9a’b의 분포권이 간돌도끼 분포권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분자생물학의 연구 결과 역시 간돌도끼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성과와 잘 합치된다. 아프리카를 출발한 호모 사피엔스들 중 일부 그룹이 오세아니아의 북태평양 연안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했고, 그들이 바로 간돌도끼를 만들고 사용한 집단이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유럽은 간석기의 양상과 출현 시기가 오세아니아 및 아시아 지역과 사뭇 다르다. 단순히 ‘인위적으로 갈린 것’만으로 간석기를 정의한다면 유럽의 안료들이 단연코 이른 시기의 간석기로 거론될 수 있다. 블롬보스 동굴에서 출토된 매끈하게 갈아서 만든 안료는 무려 7만 7000년 전의 것이다. 이 외에도 안료를 분쇄할 때 사용한 다양한 형태의 갈돌류, 뼈 도구와 상아 조각품 등을 만드는데 사용한 일종의 숫돌류 등에서 갈아서 만든 자국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중 안료나 갈돌 등은 다른 도구의 사용 과정에서 나온 2차 결과물이다. 그러니까 초기에는 마연 기술을 도구 제작에 능동적으로 사용했다기보다는, 다른 목적을 위한 작업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확인하는 양상에 가깝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마연 기술의 본격화 이전의 시원적 의미 정도만 부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