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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무한한 자원을 가진 해양은 인간에게 새로운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주었다. 그것도 아주 안정적인 공급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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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는 엄연한 사냥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냥감이 물속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육상의 사냥꾼과는 좁혀지지 않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어부의 사냥감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냥감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들여야 하고, 목표한 사냥감을 물 밖에서도 놓치지 않으며, 끝내는 뭍으로 무사히 끌어올리기 위해 어부들은 그들만의 도구를 고안했다. 용맹함과 민첩함이 육상 사냥꾼의 미덕이라면, 바다 사냥꾼의 미덕은 기다림과 지혜로움일 것이다. 같은 사냥이지만 이렇게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잡는 행위는 인간 진화 과정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고도 한참 후에야 나타났다.

바다의 여러 자원 중에서 가장 일찍부터 인간의 식탁에 등장한 것은 물 밖으로 종종 드러나는 조개류였다. 약 1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들이 살았던 스페인 남부의 바혼딜로Bajondillo 동굴에서는 그들이 사냥한 사슴과 염소 뼈들 사이에서 홍합, 따개비, 바다 골뱅이 등 해변에서 채집 가능한 조개류의 껍질이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홍합인데, 일부에서는 열 손상도 확인되었다. 채집한 조개를 동굴로 가져와 모닥불에 익혀 먹었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네안데르탈인의 조개 취식 증거가 더 있지만, 동물 뼈에 비하면 조개껍질의 양은 매우 적은 편이다. 네안데르탈인은 대체로 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의 내륙 지대에만 거주했으므로 바다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를 봤을 때, 그들은 용맹한 육상 사냥꾼이었다.

그림1. 피너클 포인트 클라시스강 유적의 조개무지.png

[그림1. 피너클 포인트 클라시스강 유적의 조개무지]

네안데르탈인들과 공존했던 비슷한 시기의 호모 사피엔스 유적에서도 조개 식용의 증거를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남아공의 피너클 포인트Piannacle Point에 있는 13B 동굴은 약 16만 년 전에 호모 사피엔스가 생활한 유적으로, 홍합류와 따개비 등의 조개껍질이 상당량 남아 있었다. 일대의 호모 사피엔스 유적에는 네안데르탈인 유적과는 달리 마치 신석기시대 조개무지처럼 두터운 조개껍질 퇴적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들은 조개 외에도 바닷새와 펭귄, 거북이 같은 소형 포유류도 사냥했으며, 타조알을 채집한 증거도 남아 있다. 아직 해양 자원 이용 초기였으므로, 바다에만 의존하기보다는 다양한 식량 공급원을 확보하는 편이 집단의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특히 남아공 남해안의 조간대는 밀물의 수위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따라서 조개류의 채집은 주로 봄철에 이루어졌고, 그것을 대체할 식량원의 확보가 상당히 중요했을 것이다.

피너클 포인트의 해안과 내륙에서 발견되는 화석들을 동위원소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발견되었다. 해안으로부터 약 10킬로미터 정도를 경계로 해안 쪽 화석에서 유독 높은 비율로 해양 자원 이용의 증거가 검출된 것이다. 바다와 가까우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전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이것은 기존 수렵채집 집단 사이에서 해양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새로운 성격의 집단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특정 집단이 해양 자원을 장기간 집중적으로 소비하였다면, 그들이 해안 근처에서 ‘정착’에 가까운 생활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착은 ‘집단 규모 증가’와 ‘영역 개념 발생’ 등이 뒤따르는 새로운 사회 구조의 출현을 가리킨다. 아마도 이들은 현대 어부의 조상쯤 될 것이다.

앞서 「바다를 건너간 사람들」에서 다루었듯, 호모 사피엔스들은 삶의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유자재로 바다를 건너다녔을 뿐만 아니라, 해양 자원 이용에도 눈을 떴다. 이 무렵에 해당하는, 약 2만 년 전 무렵에 해양 자원 이용에 대한 괄목할 만한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조개껍질 낚싯바늘이 발견된 동티모르의 제리말라이 유적이나 일본 사키타리 유적 등이 그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