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뼈는 돌보다 무르지만 가공이 쉽다. 나무 역시 돌보다 가공이 쉽지만, 뼈보다는 강도와 탄성이 떨어진다. 반면 돌은 가장 강한 만큼 가공이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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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뼈 도구들은 그보다 100만 년 이상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돌 도구에 비하면 초라하거나 그 아류에 불과했다. 종류도 한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직 물성이 다른 재료들을 차별적으로 활용하는 단계까지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뼈 도구의 진면목을 발견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전의 인류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다양한 기술적 혁신을 이루어냈는데, 뼈 도구와 관련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술 발전 과정에서 뼈 고유의 특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적절한 자리를 잡아주었다.
뼈는 돌보다 무르지만 가공이 쉽다. 나무 역시 돌보다 가공이 쉽지만, 뼈보다는 강도와 탄성이 떨어진다. 반면 돌은 가장 강한 만큼 가공이 까다롭다. 구석기 시대 도구 제작에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이 세 가지 재료들 가운데 뼈는 ‘가공은 쉽고 적당히 단단한’, 그래서 어쩌면 애매할 수도 있는 중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호모 사피엔스들은 이를 장점으로 적극 활용했다. 핵심은 가늘고 긴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갈아서 가공하는 기술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시기였으므로 뼈를 반복해서 긁어서 가늘게 만들었다. 이때 뼈를 긁어내기 위해 날카로운 석기를 사용했으므로 표면에는 무수히 긁힌 자국이 특징적으로 남아 있다.
‘긁어서 가늘고 길게 만드는 기술’의 기원은 이미 30만 년 전 독일 쉐닝겐Schöningen 유적에서 발견된 나무 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가문비나무로 만든 창들은 껍질이 제거되고 양 끝이 뾰족하게 깎여 있다. 가늘고 길게 깎아 만든 뼈 도구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송곳류이다. 돌을 깨뜨려 뾰족한 송곳을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어렵지만, 날을 길게 만들기 힘들어서 성능 또한 우수하지 않다. 돌 대신 나무로도 대체해보았을 테지만, 그건 내구성이 약해서 일회용에 불과했을 것이다. 반면 팔다리 부위와 같이 치밀하고 단단한 뼈로 만든 송곳은 상당한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뼈 송곳의 유용성을 입증하듯 호모 사피엔스의 초기 뼈 도구 중에는 송곳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림 1. 블롬보스 동굴의 뼈 송곳]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유적이 남아공의 블롬보스Blombos 유적이다. 블롬보스 유적은 호모 사피엔스 지적 성장의 특이점을 거론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뼈 도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유적에서는 뼈로 만들어진 약 8만 년 전의 송곳 25점이 출토되었다. 송곳 표면에는 무수히 가는 선들이 남아 있어 날카로운 석기로 정교하게 긁어내어 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뼈 송곳의 일반적인 용도는 가죽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가죽 조각은 서로 이어야 옷도 되고 신발도 되므로 구멍 뚫는 작업이 빈번하게 필요했을 것이다.
송곳과 함께 발견된 또 하나의 중요한 뼈 도구는 창이다. 창은 송곳과 전혀 다른 도구 같지만, 가죽을 뚫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용도의 도구이기도 하다. 블롬보스 유적의 뼈 도구를 검토한 연구자들은 송곳과 창이 동일한 반제품(blank)을 손질해서 만들어졌지만, 최종 완성 기법은 서로 달랐다고 설명한다. 블롬보스의 창은 모두 세 점인데, 완전한 형태로 남은 것은 길이는 8센티미터에 폭이 1.5센티미터다. 창의 표면에는 매끈한 광택이 형성되어 있다. 송곳에는 없는 이 광택은 기능적 의미는 없으며, 창의 외관을 돋보이게 하고자 의도적으로 가공된 장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시기에 뼈로 만드는 길고 가는 형태의 도구들을 위한 반제품이 존재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창에 의도적인 광택을 추가했다는 점 역시 주목되는 부분이다. 창은 식탁의 풍요로움을 제공하는 귀중한 도구였으므로 그 가치를 ‘광택’이라는 상징적 요소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