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말로 맞설 것인가, 어떤 말로 나를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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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그 문장을 잠깐 이해하고, 되새기고, 반복하는 동안, 내 마음도 따라 확장되고, 지혜로워지고, 아름다워지는 느낌. 눈부신 문장에는 그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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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처신하실 것 같아요.” “작가님은 말씀을 워낙 잘하시니까, 황당한 봉변 같은 건 당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이런 말을 들을 때, 나는 당황한다. 그토록 오랫동안 심리학과 문학 공부로 완전 무장한 나도 언제나 당당하지는 못하고, 어처구니없는 봉변도 당하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직업이 모든 무례함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이 세상 어떤 직업도 그럴 것이다. 사람들이 ‘나는 판사다’, ‘나는 교수다’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유난히 허례허식이 많은 우리나라, 명품이나 고급 승용차나 자택의 평수 따위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이런 사치와 허례허식은 ‘그냥 한 번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아무도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리라’는 강력한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벌이나 명품 액세서리나 고급 자동차 같은 것들로 ‘나를 더 돋보이게 만들겠다’는 생각 자체가 병든 페르소나의 발로다. 진정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다.

당황스럽게도 무례한 사람들은 전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오히려 점점 늘어가는 느낌이다. 이쪽에서 아무런 액션이 없을 때조차도, 그냥 혼자 조용히 나의 일만을 했을 뿐인데도, 황당한 봉변을 당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온갖 심리학과 문학으로 철벽수비를 해왔건만. 이번에는 잘 되지 않았던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던 순간이었다.

나는 지하철 좌석에 앉아 열심히 원고를 쓰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하루였지만, 어디서든 노트북을 펴놓고 타이핑을 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글을 썼다. 내 앞에 두 여성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20대, 다른 한 사람은 50대 정도로 보였다. 그런데 20대 여성이 내 노트북을 무심코 툭 쳤다. 노트북이 내 무릎에서 떨어질 뻔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놀란 나머지, 나는 잠깐 얼어붙었다. 실수로 그런 거겠지, 설마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다시 원고를 썼다. 그런데 그 다음에 들려온 그들의 대화가 더욱 충격적이었다.

“네가 노트북을 망가뜨린 것도 아니잖아. 뭘 그래, 그냥 가만히 있어.”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노트북을 망가뜨리지 않았다면, 타인의 물건을 확 치고도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아도 된단 말인가. 20대 여성이 뭔가 곤란한 제스처를 취했나 보다. 그런 모습을 보고 50대 여성이 조언을 해준다는 것이 바로 그런 문장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니. 노트북을 망가뜨린 건 아니라니. 나는 이번에는 더 큰 놀라움으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말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