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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부 인간들은 예외였다. 초기 인간 종 중 하나가 다른 동물들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했던 뼈 조각을 관심 어린 시선으로 관찰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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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의 시작은 ‘진화’였지만 성장 과정은 ‘도구’다. 인간의 현대 문명과 문화에서도 도구 아닌 것은 사실상 없다. 인간만이 가진 고도의 무형유산인 정신문화조차도 도구를 통해 표현되고, 전수되며, 남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가 까마득히 앞선 시대를 살다 멸종된 고인류의 정신세계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것 역시 그들이 남겨둔 도구 덕분이다. 인간의 초창기 도구 중에서는 드물게도 자연계에서 인간만의 남다른 시각과 사고 체계를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뼈나 뿔 등으로 만든 도구다. 이번 글에서는 돌 도구의 강하디 강한 인상에 뒤에서 엉거주춤한 조력자처럼만 보이던 뼈 도구의 진면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뼈 도구 전반의 흐름을 짚기 위해서 주요 국면을 따라 모두 세 편으로 나누어 이야기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이른 시기의 돌 도구는 케냐 투르카나Turkana 호수 근처에서 발견된 약 330만 년 전의 것이다. 성인 주먹보다 조금 더 큰 자갈돌을 거칠게 깨서 만든 찍개는 투박하지만 꽤 위협적이다. 이 석기를 사용했던 인간들의 눈에는 강가에 굴러다니는 주먹만 한 둥근 자갈은 전부 도구를 만들 재료로 보였을 것이다. 언제든 적당한 것을 골라서 두드려 깨면 생산 활동에 동원할 수 있었으니까.

돌에 비하면 동물의 뼈나 뿔은 고기라도 붙어 있지 않는 한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육식동물들이 거칠게 뜯어 먹고 남긴 뼈의 잔해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인간을 비롯해 채집에 의존했던 잡식성 동물들은 그 잔해에서 먹을 수 있는 것만 챙기고 남은 건 그대로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 인간들은 예외였다. 초기 인간 종 중 하나가 다른 동물들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했던 뼈 조각을 관심 어린 시선으로 관찰했던 것 같다. 수북한 뼈 더미에서 간간이 적당한 크기의 뼈를 골라 도구로 사용했던 증거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림 1. 남아공 스와르트크란스(위)와 크롬드라이(아래) 유적의 뼈 도구.png

[그림 1. 남아공 스와르트크란스(위)와 크롬드라이(아래) 유적의 뼈 도구]

뼈는 돌에 비해 훨씬 빨리 썩어 없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돌보다 뼈가 먼저 도구로 사용되었는데 모두 썩어버렸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증거로 볼 때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이제까지 알려진 뼈 도구들 중 가장 이른 제작 연대가 약 180∼100만 년 전 무렵인데, 같은 시기의 돌 도구에 비하면 가공 수준이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다.

초기 인류의 요람으로 일컬어지는 남아공의 스와르트크란스Swartkrans와 스테르크폰타인Sterkfontein, 드리몰렌Drimolen 등의 유적 밀집지에서는 초기 뼈 도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스와르트크란스는 표범에게 사냥당한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Paranthropus robustus의 머리뼈가 발견되어 유명해진 유적이다. 동굴에서는 많은 양의 동물 뼈가 발굴되었는데, 그중 일부에 도구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발굴 이후 몇 차례 정밀한 분석을 통해 약 20여 점의 도구를 선별했다. 도구로 선택된 뼈들은 포유류의 팔다리뼈 중에서 길이가 13∼19센티미터 정도 되는 부분이다. 팔다리뼈는 다른 부위에 비해 길고 곧으며 좀 더 단단하다. 특정 부위의 뼈를 선호하였다는 것은 그 부위가 가진 특성에 착안하였다는 의미로, 이미 300만 년 전부터 석기를 제작하며 쌓아 온 지적 성취의 연장선상에서 충분히 가능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초기 뼈 도구의 특징은 인위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오래된 뼈 더미에서 적당한 길이의 뼈 조각을 선별해 그대로 도구로 사용했다. 신선한 상태의 뼈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풍화된 뼈를 도구로 활용했다. 일정 기간 비와 바람에 노출되어 표면이 매끄러워졌으며 부러지기도 해서 손에 쥐고 사용하기에 적당한 것들을 골랐다. 하지만 즉흥적으로 사용하고 버린 일회적 행동은 아니었다. 제법 오랫동안 사용한 결과 한쪽 끝이 둥글게 마모되는 등, 뼈에 사용흔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닳은 부분의 사용흔 분석과 사용 실험 결과에 의하면 주로 흰개미 집을 파내거나, 나무껍질을 벗기는 작업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흰개미는 자신의 배설물과 고운 흙, 나무 가루 등을 사용하여 집을 짓는다. 이 때문에 뼈 도구의 사용 부위가 아주 매끄럽게 닳는다. 만약 뼈 도구로 단단한 땅을 팠다면 흙에 포함된 모래 알갱이들 때문에 거친 선이 남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