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이제부터 ‘원시’ 아닌 ‘문명’과 ‘기술’의 시대라는 관점에서 구석기시대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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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화는 단연코 혁명적이다. 현존 생태계를 통틀어 진화라는 측면에서 인간보다 인상적인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피식자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극적으로 변신했다. 인간의 진화에는 생태계의 다른 생물체들과는 극명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우리는 ‘몸’만 진화한 게 아니다.
인간은 원래 주행성(晝行性)이다. 낮에 활동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우리 눈은 다른 동물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진화했다. 태양이 밝게 빛나는 낮 동안에는 다채로운 색깔을 인지하고 3차원의 입체 공간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어떤 공간을 단순히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그 공간 안의 사물들이 얼만큼 떨어져 있는지 매우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반면 대지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면, 맹수를 비롯한 어둠 속 존재들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동굴 안으로 숨어야 했다. 여기까지가 ‘몸’의 진화의 한계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낮이든 밤이든, 혹은 밝은 곳이든 어두운 곳이든 못 가는 곳이 없다. 눈이 더 진화한 것이 아닌데도, 낮과 밤을 아우르는 전천후 동물로 살고 있다. 몸 이외의 진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구의 진화 과정에서 어둠 속을 훤히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인간의 강력한 도구인 ‘또 하나의 눈’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불(fire)은 언제나 중요하게 언급되는 주제다. 하지만 대부분 그 열기를 이용한 요리, 난방이나 방어 기능에만 집중한다.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불의 또 다른 위대한 속성이 있으니, 바로 빛(light)이다. 불을 막 길들였던 시대의 인간들은 그 따스함에 먼저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두운 밤 바위 그늘 아래에서 모닥불을 지키던 인간들은 전과 달리 서로의 얼굴이 확실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모닥불을 향해 둘러앉은 그들의 등 뒤로 불빛에 의해 밀려난 어둠과 일렁이는 그림자를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 불은 어둠을 걷어낼 수 있다. 어둠이 걷히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빛의 힘을 처음 자각한 인간들의 눈에는 신기함을 넘어 경이롭고 신성한 어떤 것이 비쳤을 것이다. 우리는 몸의 진화만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었던 ‘제3의 눈’을 이렇게 갖게 되었다.
빛과 열은 모두 무형(無形)의 존재다. 그중 열은 차갑게 식은 후에도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종종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불을 가두어 두었던 화덕과 오랫동안 한 장소에서 불을 피운 결과 두텁게 쌓인 재들의 층으로 발견되거나, 뜨거운 열기로 갈라지거나 붉게 변한 흙덩어리나 돌조각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이에 반해 과거의 빛은 고고학적 자료로 그 흔적을 확인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의 고고학 유적처럼 야외 유적이 대부분인 경우엔 더욱 그렇다. 야외 유적이나 소규모 바위그늘 유적에서는 모닥불 자체가 열원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조명의 역할도 겸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열과 빛의 속성을 구분하지 않고 이용하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불의 속성 중에서 열을 처음 사용한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로 추정한다. 과연 그들이 불을 빛으로도 인식하고 이용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까지의 고고학 증거로는 빛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호모 사피엔스였을 가능성이 높다.
고고학자들이 과거의 인간이 빛을 도구로 사용한 첫 증거를 찾아낸, 아니 처음으로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곳은 유럽의 구석기시대 동굴 유적이다. 태양빛이 닿지 않는 수십 미터 깊이의 동굴에서 벽화를 조사하던 고고학자들은 당연히 여러 의문이 떠올랐을 것이다. 예컨대 이들은 어떻게 땅속 깊은 곳까지 들어왔을까? 칠흑처럼 캄캄한 이곳에서 어떻게 벽화를 그렸을까? 횃불을 사용한 걸까? 아니면 나뭇가지를 모아서 모닥불을 피웠을까?
의문은 동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동굴 안에서 과거의 인간들이 빛을 나를 때 사용한 작은 등잔이 나왔다! 인류 최초의 등잔은 프랑스 고고학자 에밀 리비에르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에밀은 논문에 자신이 발견한 등잔 외에도 여러 개의 등잔을 언급했다. 즉 구석기시대 등잔의 존재는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확신이 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에밀은 1899년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라무트 동굴에서 등잔을 수습했다. 동굴 입구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발견된 등잔은 붉은색 사암을 정성껏 갈아서 만든 것이었다. 길이는 약 17센티미터 정도로, 거의 완전한 반구체 형태였다. 한쪽에는 삼각형 손잡이가 달려 있다. 반구의 내부는 연료를 담을 수 있도록 깊게 파여 있고, 외부의 바닥면에는 뿔이 긴 야생 염소(ibex) 한 마리가 새겨 있다.(사진1) 에밀은 등잔의 염소와 동굴 벽의 염소 그림의 표현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보고 동일한 ‘예술가’가 이들을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이후 수많은 등잔이 속속 보고되기 시작해, 지금까지 수백 개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가장 유명한 등잔은 프랑스 라스코 동굴 등잔으로, 역시 붉은색 사암을 갈아서 만들었다. 연료를 담는 반구체는 라무트의 것과 비슷하지만 손잡이가 막대형으로 길쭉하다. 정교하게 갈아서 만든 손잡이의 윗면에 음각으로 동물의 뿔, 혹은 창이나 화살을 상징하는 뾰족한 선을 새겼다.(사진2) 등잔의 길이는 22.4센티미터이며, 길이 방향 중심축을 기준으로 거의 완벽한 좌우 대칭이다. 구석기시대에 만든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마연 기술이 정교하다. 만일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면 구석기시대 도구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구석기시대의 것이라고 인정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이 이야기를 『단단한 고고학』 214쪽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라스코와 라무트의 등잔을 통해 인류는 적어도 2만 년 전 무렵에 마연 기술을 숙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스코 등잔은 짐승을 사냥하다 쓰러진 사람을 그린 벽화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지면으로부터 약 30센티미터 아래에서 발굴되었는데, 오목한 등잔 내부에 타다만 재와 연료 일부가 화석이 되어 남아 있었다.(사진 3) 등잔에 남아 있는 유기물은 과거의 연료나 사용법을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분석해 보니 동물의 종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소과나 멧돼지과 동물과 유사한 지방산이 검출되었다. 지방 연료를 흡수해서 불을 밝히던 심지는 침엽수, 그중에서도 향나무과 식물의 잎이나 마른 이끼류로 확인되었다. 그러고 보니, 19세기 민족지 연구는 극지방의 이누이트가 자연에서 얻은 이끼류로 천연 심지를 만든다고 보고했다. 무려 2만 년간 인류의 밤을 밝힌 등잔과 심지 기술의 장구한 역사가 보이지 않나. 이제부터 ‘원시’ 아닌 ‘문명’과 ‘기술’의 시대라는 관점에서 구석기시대로 들어가 보자. (다음에 계속)